비극은 눈물을 마시고 희극은 술을 마신다고 했던가! 아니다, 술은 희극에서만 마시는 게 아니다. 희비극 가림이 없다. 슬프면 슬프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비 오면 비 온다고 추우면 춥다고 한 잔. 그게 술이다.
음주에 가리지 않는 걸 10가지나 꼽는 주선(酒仙)들도 있다. 주야불문, 청탁불문, 금전불문, 다과불문…. 밤낮, 청주 탁주, 술값, 많고 적음 등. 술에 관한 한 영국인 못지않은 한국인이다. 오죽하면 ‘마신다’ 하지 않고 ‘먹는다’고 할 것인가.
근대 인물 가운데 ‘술’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학자·문인 둘이 있으니, 먼저 ‘문주(文酒) 반생기’의 무애(无涯) 양주동(1903∼1977).
무애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동네 주막을 따라다녔다. 이때부터 그의 술 이력은 시작된다. 그리고 열 살 때 벌써 그는 속수(束脩·입학금)로 술을 받아마실 만큼 호주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그런 그였던 만큼 취중 일화도 많다.
그렇다고 마신 얘기만 있는 게 아니다. 염상섭 이은상 문일평 등 숱한 문우 주우(文友酒友)들과 잔을 나누다가도 문학을 논하는가 하면 단어 외우기 내기를 한 얘기도 있다. 한 잔 술로써 서로 스승이 되기도 하고 제자가 되기도 한 것이다.
무애가 글과 술로 반평생씩을 살다 갔다면, 수주(樹州) 변영로(1898∼1961)는 ‘명정(酩酊·만취) 40년’을 남기고 갔다. 한번은 주당 넷이 어울려 서울 사발정 약수터에서 어지간히 마시고 성균관을 지나 큰 네거리로 들어오려다 봉변한 일이 있었다. ‘일사불착(一絲不着)한 상태’로 소를 타고 오다가. 참으로 소설 같은 얘기다.
이제 무애도 수주도 고인이 되고 없지만, 술 문화는 오늘도 계속된다. 선인들이 주종 불문하고 즐겼다면, 현대인들은 갈수록 순한 술을 찾는 것 같다. 그래선지 서민의 술 소주의 알코올 함량이 또 떨어졌다. 가장 대중적인 두 가지만 해도 17.5도까지 낮아졌다.
지난달 17일 하이트진로가 ‘참이슬’의 알코올 도수를 18.5도에서 1.0도 낮춘 데 이어, 지난 1일부터 롯데주류도 0.5도 낮춘 17.5도짜리 ‘처음처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소주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니 취생몽사(醉生夢死)도 우려된다.
순한 술은 마시기엔 좋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듯, 일단 취하면 몸 따로 정신 따로 놀기 십상이다. ‘만취(滿醉)한 수술 의사’가 지금 사회적 지탄받는 중이다.
황성규 / 논설위원
문화일보 [오후여담] / 게재 일자 : 2014년 12월 03일(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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