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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의 賣春

라이프(life)/풍수지리

by 굴재사람 2014. 3. 3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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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의 賣春

 

 

고대 희랍의 신전 터와 여러 유적지의 풍수(風水)를 둘러보니 한국의 풍수적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기(地氣)가 강하게 올라오는 바위산을 중시했고, 주변에 바다와 강이 있어 수기(水氣)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에다 신전을 건립하였다는 점이 한국의 불교 사찰 터와 똑같았다.

그리스 본토에서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이어지는 병목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 고린도(Corinth) 유적지도 풍수적으로는 재물이 모이는 명당이었다. 본토와 반도를 이어주는 지협(地峽) 지점일 뿐만 아니라 에게해(海)와 아드리아해를 연결해주는 해상과 육상 물류의 십자로 아닌가. 무역을 하려면 물류 중심지인 고린도를 통과해야만 했으니 돈이 모이고 도시가 번창할 수밖에 없었다. 뱃사람과 장사꾼, 떠돌이들이 득실거렸다.

특이하게도 고린도는 '매춘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매춘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 보통 여자들도 매춘을 했지만, 심지어는 신전의 여사제(女司祭)들도 매춘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여사제는 대략 1000명 정도 됐는데, 이 여사제들도 매춘을 했다고 한다. 미(美)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신전에 소속된 여사제들이었다. 왜 여사제인가? 아프로디테 신전에 갖다 바칠 제물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여사제들이 매춘을 하였다. 한결같이 뛰어난 미모를 지닌 여자들을 사제로 선발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재력의 남자들은 감히 이 여사제들을 만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바이블에 '고린도전서'가 나온다. 이곳이 매춘과 방언(方言)이 아주 성행하는 대도시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신앙 지침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린도는 또한 신탁의 중심인 '델피(Delphi)'와 가까운 위치였으므로 기독교가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델피의 영향을 받아 헬라어로 된 방언이 유행하고 있었던 점이 주목된다. 풍수적 핵심은 양쪽 바다를 바라보는 터인 아크로고린도(Acrocorinth)였다. 575m 높이의 절벽으로 된 바위산 정상에 세워놓은 산성(山城)이자 신전 터이다.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이 일대에 지기를 공급해주는 발전기 같은 영산(靈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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