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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시모음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4. 3. 1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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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시 모음> 이오덕의 ´봄아, 오너라´ 외

+ 봄아, 오너라

먼 남쪽 하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넘고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불어오너라.

양지쪽 돌담 밑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 옆에서
새파란 것들아, 돋아나거라.

발가벗은 도토리들
가랑잎 속에 묻힌 산기슭
가시덤불 밑에서
달래야,
새파란 달래야, 돋아나거라.

종달새야,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잊었던 노래를 들려 다오.
아른아른 흐르는
여울물 가에서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
쑥을 캐게 해다오.

개나리꽃 물고 오는
노랑 병아리
새로 받은 교과서의
아, 그 책 냄새 같은

봄아, 오너라.
봄아, 오너라.
(이오덕·소설가, 1925-2003)


+ 봄눈

나 오늘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봄바람에 살살 녹아나는
저 봄눈 앞에,
(정세훈·시인, 1955-)


+ 경칩 부근

견디기 어려워, 드디어
겨울이 봄을 토해 낸다

흙에서, 가지에서, 하늘에서,
색이 톡 톡 터진다
여드름처럼
(조병화·시인, 1921-2003)


+ 봄을 위하여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다시 오는 봄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도종환·시인, 1954-)


+ 봄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오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김광섭·시인, 1905-1977)


+ 봄 풍경

싹 틀라나
몸 근질근질한 나뭇가지 위로
참새들 자르르 내려앉는다
가려운 곳을 찾지 못해
새들이 무작위로 혀로 핥거나 꾹꾹 눌러 주는데
가지들 시원한지 몸 부르르 떤다
다시 한 패거리 새 떼들
소복이 앉아 엥엥거리며
남은 가려운 곳 입질 끝내고는
후드득 날아오른다
만개한 꽃 본다
(신달자·시인, 1943-)


+ 난 지금 입덧 중 - 입춘

하얀 겨울,
치마끈 풀어내고 살그머니
가슴에 작은 꽃씨 하나 품었다.

설 넘긴 해가 슬금슬금 담을 넘자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
토해도 토해도 앙금으로 내려앉는 금빛 햇살

매운 바람 속에 꼼지락거리던
꽃눈 하나 눈 비비고 있다.
(목필균·시인)


+ 봄

멀리서 우리들의 봄은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아프게 아프게 온다고 했으니
먼 산을 바라보며 참을 일이다.
가슴에 단단한 보석 하나 키우면서
이슬 맺힌 눈으로 빛날 일이다.
(최종진·신부 시인)


+ 벗에게 부탁함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정호승·시인, 1950-)


+ 봄이 오는 쪽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차가운 얼음장 밑
실핏줄처럼 가느란 물소리
따사로운 소리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
귀기울일수록 힘세어지는 소리
알아듣는 가슴속에서
저 겨울산의 무거운 침묵 속
벼랑과 벼랑 사이
숨었다 피어나리
저 겨울벌판의 얼어붙은 땅 위에
납작 엎드렸다 피어나리
피어나 노래하리
은방울꽃, 애기나리, 노랑무늬붓꽃,
회리바람꽃, 지느러미 엉겅퀴,
땅비싸리, 반디지치, 숲바람꽃,
그리고 베고니아 베고니아
울어울어 마음에 가슴에
푸른 멍 붉은 멍들었을지라도
눈앞 코앞 하루 앞이 우울할지라도
계절이야 끊임없이 갈마드는 것
흥함도 쇠함도 갈마드는 것
이 모두도 지나가리니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봄을 버리지 않는 마음속에서
외따로 멀리도 바라다보는 눈雪길 속에서
(홍수희·시인)


+ 사기꾼 이야기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
언제나 추운 앞마당 내다보며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내일 아침엔 정말로 봄이 오고야 말 거라고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
(정성수·시인, 1945-)


+ 행복을 향해 가는 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간격

봄이 오고 있다
겨울에서 이곳까지 굳이
기차를 타지 않아도 된다
걷다보면 다섯 정거장쯤
늘 겨울 곁에 있는 봄
그 간격이 좋다

친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은
꽃과 잎사귀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슬픔과 기쁨 사이
가끔은 눈물과 손수건만큼의
그 간격이 좋다

허공을 채우고 있는
겨울, 나무와 나무 사이
외로움과 외로움 사이에 떠 있는
간이역
기차표와 역정다방의 여유
그만큼의 간격이 좋다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과
오는 봄을 내버려두고
그대와 나 사이
그 간격 속에 빠져버리고 싶다
(정용화·시인, 충북 충주 출생)

 

+ 봄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반칠환·시인, 1964-)


+ 봄

봄꽃은 승전가다.
혹독한 추위와
칠흑의 어둠을 이겨낸
그들 생명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찬가다.
(김필연·시인)


+ 無言으로 오는 봄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天地神明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혀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말이 가장 많을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 보게나.
(박재삼·시인, 1933-1997)


+ 봄이 오는 모습

봄은 나 봄입네 하고 오지 않는다
속으론 봄이면서
겉으론 겨울인 양 온다

그러다가 들통이 나면
그때야 비로소
꽃망울을 터트린다

경제도 그렇고
불황에서 호황이나 좋은 일은
그렇게 오는지 모르게 온다
(차영섭·시인)


* 봄꽃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함민복·시인, 1962-)


+ 봄

봄은 그 이름만으로도 달뜬다

예서 제서 쭈뼛거리는 것들
쭈뼛거리다 돌아보면 터지고

터지다 못해
무덤덤한 심장까지 쫓아와 흔들어대는
연초록 생명에 오색 꽃들에...,

하늘마저 파래 주면 꽃잎 날리듯
심장도 풋가슴으로 춤을 춘다

애먼 걸 둘러대어도 이유가 되고
용서가 될 것만 같은 봄, 봄.
(김필연·시인)


+ 난생처음 봄

풀 먹인 홑청 같은 봄날
베란다 볕 고른 편에
아이의 신발을 말리면
새로 돋은 연둣빛 햇살들
자박자박 걸어 들어와
송사리 떼처럼 출렁거린다
간지러웠을까

통유리 이편에서 꽃잠을 자던 아이가
기지개를 켜자
내 엄지발가락 하나가 채 들어갈까 말까 한
아이의 보행기 신발에
봄물이 진다

한때 내 죄가 저리 가벼운 때가 있었다.
(김병호·시인, 1971-)


+ 사람들

봄은
얼음장 아래에도 있고
보도블록 밑에도 있고
가슴속에도 있다
봄을 찾아
얼음장 밑을 들여다보고
보도블록 아래를 들추어보고
내 가슴속을 뒤지어 보아도
봄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 속에서
나는
봄을 보았다
봄은 사람들이었다.
(강민숙·시인, 1962-)


+ 그해 봄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나는 지쳐 쓰러져 있었고
병든 몸을 끌고 내다보는 창 밖으로
개나리꽃이 느릿느릿 피었다
생각해보면
꽃 피는 걸 바라보며 십 년 이십 년
그렇게 흐른 세월만 같다
봄비가 내리다 그치고 춘분이 지나고
들불에 그을린 논둑 위로
건조한 바람이 며칠씩 머물다 가고
삼월이 가고 사월이 와도
봄은 쉬이 오지 않았다
돌아갈 길은 점점 아득하고
꽃 피는 걸 기다리며 나는 지쳐 있었다
나이 사십의 그해 봄
(도종환·시인, 1954-)


+ 내 마음에도 봄이 오면

내 마음에도 봄이 오면
노랗고 빨간 꽃들이 지천으로 필까.

파아란 하늘 아래
연한 바람이 불고
연녹색 환희로 가슴 벅찰까.

오순도순 웃음소리가 들리고
포근한 정이 보드랍게 쌓일까.

내가 순수했던 어릴 적엔 몰랐네
마음에도 오솔길이 있었고
마음에도 꽃길이 있었고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네
마음에도 겨울이 길어 찬바람 불고
마음에도 슬픔이 많아 꽃이 진다는 걸..

아무래도 내일은
태양을 하나 따서 불지펴야겠다.

언 땅을 녹이고 언 마음을 녹이고
차가운 겨울 단숨에 떨쳐내고
꽃잎 같은 봄 하나 만들어야겠다.

마음에 푸른 숲 만들며 살아야겠다.
꿈결같은 그 숲길 나란히 걸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어야겠다.
(김용화·시인, 1971-)


+ 햇빛이 말을 걸다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권대웅·시인, 1962-)


+ 봄날의 산책

어떤 길은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낯설지 않은 길, 길을
음미하며 찬찬히 걷다보면
나는 어느새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흔들흔들 걸음을 옮기면
그 사람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닮은 물푸레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하듯 잠깐 졸기도 하는 것이다.
맨몸을 드러내며 그 사람 앞에서 춤추다
무거운 햇살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박순희·시인)


+ 나는 봄이었는가

봄이 오고야 나는 나의 봄을 생각한다
나는 봄이었는가
바람 부는 날에도
눈보라 머리 풀어헤치던 날에도
나는 봄이었는가
봄은 봄이라 말하지 않는다
조용히 수줍게 올 뿐
나는 친구를 사랑하였는가
따듯한 마음을 꺼내어 주고 싶을 때
아픔 많은 친구를 위해 나눠줬는가
마땅히 줄 것 없어도
따듯한 마음을 내어주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다
나는 봄이었는가
봄이 오고야 나는 나의 봄을 생각한다
따듯하자고
만나는 사람을 흐뭇하게 하고
시냇물 졸졸 흐르게 하자고
꽃이 피면 새들은 천리 밖에서 온다
꽃이 피면 나는 봄이 되고야 만다.
(윤광석·목사 시인)


+ 봄을 먹다

봄은 먹는 것이란다
제철을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올랐으니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것이란다
얼었던 땅을 쑤욱 뚫고 올라온
푸르고 향긋한 쑥에
깊은 바다 출렁거리는
멸치 한 그릇 받아
쌈 싸서 먹어 보아라
봄은 야들야들 부드러운
육질의 맛이다
生으로 먹으니 날맛이란다
자연에서 방금 건져내서 싱싱하다
매화 넣고 진달래 넣고 벚꽃도 넣고
빗물에, 산들바람에, 햇살에
한바탕 버무렸으니
저 봄을 뼈째 썰어 먹는 것이란다
살짝 씹기만 해도
뭉그러질만큼 살이 부드럽다
우리네 산하가 국그릇에 담겨 있어
후루룩 봄을 들여마시는 것이란다
맑고 담백한 봄국으로
입안에 향기가 가득 퍼지니
갓 잡아 비릿하면서도 감칠맛의
봄은 따스한 국밥이란다
허기진 속을 달래주는 부엌의
뜨거운 솥의 탕 같은 것이란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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