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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실버의 간절한 새해 소망

글모음(writings)/아름다운 글

by 굴재사람 2012. 1. 24.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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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실버의 간절한 새해 소망




제가 이제 늙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도 강산이 변하는 세월 하나하고도 반을 더 넘겼습니다. 이 나이를 먹도록 뭐했나 싶기도 하구요, 내가 싫어하던 늙은이 행세를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하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갑자기 잠도 잘 오지 않을 때가 많고 가끔 정신이 몽롱하기도 하고 깜빡, 깜빡 하는 회수도 늘어나는 것 같고 손에 쥐고도 이리저리 찾기도 합니다. 때로는 멍 하니 무위도식을 자탄하기도 합니다.

살아 오면서 아주 싫어하는 늙은이 짓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천지신명께 부탁하노니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여주시고 특히 아무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고약한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주위 사람의 삶을 바로잡아 보고자 하는 헛된 열망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지 못하고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지난 장년기처럼 활기차고 여유로우며 유머를 갖게 하소서.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없는곳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어리석은 버릇을 거두어 주소서.

제가 가진 보잘것없는 지혜의 창고를 과장해서 오만하지 않도록 하시고 저에게도 친구가 몇명은 남아 있도록 도와 주소서.

끝 없이 이얘기 저얘기에 끼어들어 횡설수설하지 않도록 하시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달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하여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아량과 인내심을 갖고 경청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염치없이 청하기는 어렵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딫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하소서.

나도 자주 틀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저는 현자까지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는 않사옵니다

제가 눈이 점점 침침해지고 귀가 잘 안들리는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듣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행위를 빨리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선뜻 칭찬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저로 하여금 곱게 늙기를 힘쓰는 늙은이가 되게 하시고 지금까지 저에게 배풀어주신 넘치는 감사와 사랑을 이 나라와 겨레와 내주변에게 몇 배로 돌려주고 기꺼이 소천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젊은이나 어린이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사랑을 받는 그런 늙은이로 나머지 삶을 살아가게 편달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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