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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1. 10. 2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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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편지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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