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막걸리 패러독스’
막걸리는 우리 전통주의 모체다. 막걸리를 여과하면 약주나 청주가 되고,증류하면 증류식 소주가 된다. 쌀이나 보리 등을 원료로 해 술을 빚은 후 발효가 끝나면 여과하지 않고 고운 체에 막 걸러 낸다고 해서 '막걸리'라 한다. 물론 맑지 않다고 해서 '탁주'라고 불리기도 하고,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 하여 '국주'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시인 조지훈은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만 빚었다 하여 '삼도주'라 부르기도 했다.
이 땅에 술이 처음으로 빚어진 멋 옛날부터 불과 수십 년 전,정확하게는 막걸리 소비의 정점인 1974년까지 막걸리는 전체 주류소비시장의 80%에 달했다. 수천 년 동안 '막걸리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1960~1970년대에는 6 · 25전쟁 이후 복구사업과 5 · 16군사정변 이후 경제개발 계획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주세 중심의 행정이 이뤄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탈세 방지를 위해 지역단위 막걸리 양조장이 조합 단위로 만들어지고 '공급 구역 제한제도'라는 법으로 양조장이 위치한 해당 시 · 군 내에서만 판매가 가능하게 됐다. 탁주조합들의 독과점식 공급으로 품질이 저하되면서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 대중화에 성공한 맥주와 희석식 소주가 막걸리의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양조기술 발달로 막걸리의 품질이 좋아지고 공급구역제한이 풀리면서 다시 인기를 끌게 됐다.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영양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때 와인이 국내에서 급성장하기도 했다. '프렌치 패러독스(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데도 심장병 발병률이 낮은 프랑스인의 역설)'라고 하여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 효과나 항암효과 등을 강조한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이다.
와인의 '프렌치 패러독스'에 견줄 만한 '막걸리 패러독스'는 무엇이 있을까. 항암물질인 '파네졸'이 와인이나 맥주보다 25배나 함유돼 있다는 한국식품연구원의 최근 발표 외에도 몇 가지 기능적 측면이 있다. 막걸리는 6~8%의 저알코올,저칼로리 술이라는 점이다. 열량은 술 100㎖를 기준으로 막걸리는 40~70㎉,와인은 70~74㎉,소주는 141㎉,위스키는 250㎉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즐기는 생막걸리에는 효모와 유산균이 들어 있다. 효모는 단백질,식이섬유소,미네랄로 구성된 영양의 보고다. 생막걸리 100㎖에 1억~100억마리나 들어 있는 유산균은 정장작용에 도움을 준다. 막걸리의 가라앉은 '하얀 고형분'은 '파네졸'도 많이 있지만 '비소화성 식이섬유'로 포만감을 주면서 장내 독소 성분을 쉽게 배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막걸리의 효능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우리의 술 막걸리가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프렌치 패러독스'보다 더욱 설득력 있고 과학적인 해석으로 무장한 '막걸리 패러독스'로 다가가 세계인이 즐기는 '막걸리 전성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배중호 국순당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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