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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산은 무엇인가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0. 4. 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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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산은 무엇인가>


한국인은 산 밑에서 태어나서 산을 바라보며 살다가 죽고 나면 산에 묻힌다. 산은 한국인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에게 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산은 신령하고 거룩하며 하늘과 통하는 곳으로 여겨진다. 산에는 산신령이 있다고 믿으며 커다란 바위와 큰 나무는 범접하기 힘든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한국인에게 산은 하늘과 땅의 접점이다. 하늘에서 내려올 경우 제일 먼저 닿는 곳이 산이고 땅에서 하늘로 오를 경우에도 산이 제일 하늘에 가까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역사는 바로 산에서 비롯된다. 산이 한국역사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아득한 옛날이다. 천상의 세계를 다스리는 상제에겐 환웅이란 서자가 있었다. 그는 매양 지상을 내려다보며 인간의 세계를 다스려 보려는 욕망을 품어오곤 했다. 아버지 환인은 그 아들의 뜻을 알아챘다. 그리곤 아래로 지상의 세계를 굽어보았다. 아름답게 펼쳐진 산과 강과 들 - 그 가운데서 삼위태백(三危太伯)이란 산, 그곳이 널리 인간을 다스려 이익케 할 만한 근거지로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다.」(삼국유사 권1, 일연저 이동환역주)

고대 한국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유사는 이와 같이 시작하고 있다. 삼위태백이 정확히 어떤 산인지 분간하기는 현재 어렵다. 백두산이라고도 하고 묘향산이라고도 하며 태백산이라고도 한다. 어떤 산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시조가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늘에서 보면 산이 가장 가까운 땅이다. 땅 위에서 바라보면 높은 산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산 위에 올라서면 하늘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마천령, 마천루에서 마천(摩天)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이 산을 오르는 것은 산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이다. 산정이 가까워 올수록 마음은 경건해지고 신령한 기분에 휩싸인다. 높은 산에 오르면 마치 하늘에라도 오른 듯이 멀리 아득한 세상을 조망하게 된다. 새로운 기운이 온몸에 충만하고 자신도 모르게 호연지기가 넘치는 것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등산이라는 말은 근래 쓰는 말이고 원래 한국인들은 산에 가는 것을 입산이라고 하였다. 산에 들어간다는 것은 산의 품에 안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산은 사람을 마다하지 않는다.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산에 오를 수 있는 그런 산들이다.

한국의 산은 사람을 끌어안는 아늑한 공간이고 사람을 거부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히말라야의 고산처럼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산들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의 삶이 그 속에 깃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건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한국은 지평선이 없는 나라이다. 남으로 평야지대가 있으나 역시 동서사방에 산이 안 보이는 평야는 없다. 산지가 전 국토의 거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산악 국가이다. 유럽이 22%, 북아메리카가 36%의 산지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한국은 산이 많은 나라임에 분명하다. 북으로 갈수록 동으로 갈수록 산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2000미터 이하의 둥근 산으로 되어있다.

속세를 떠나겠다고 하면 바로 산으로 들어간다. 한국인에게 들판은 세속이다. 도를 닦기 위해서는 산이 필요하다. 산에서 산나물을 먹고 나무 열매를 먹어야 수도가 된다. 떨어지는 폭포수에서 명상을 하고 바위 위에 앉아야 선이 된다.

한자에서 신선 자는 바로 산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산에서 이룰 수 있는 도의 경지에 도달하면 산을 내려간다는 의미로 하산이라는 말을 쓴다.

한국인들에게 명당자리는 산을 제외하고 생각할 수 없다. 높은 산도 아니고 아주 얕은 산도 아니다. 뒤에는 주산이 있고 좌우에 좌청룡 우백호라 할 만한 산이 에워싸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안산이라고 하는 작은 산이 멀리 앞에 있어야 한다.

물론 남향으로 물이 흘러야 하고 산 밑에는 적당한 평지가 필요하다. 이런 조건이라면 겨울에는 북풍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남풍이 불어 시원할 것이며 햇볕이 따뜻하게 비치는 주거에 적합한 적지가 될 만하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내가 흐르는 들판이 있어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땅이다. 대부분의 마을들이 이런 지리적인 조건을 가지고 생겨났다. 아늑하다는 표현은 한국인에게 따뜻한 감성을 일으킨다. 아늑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울타리도 생겨났다.

산과 산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질펀하게 넓은 땅이 허전함을 주고 집 마당도 적당히 좁은 것을 택한다. 몽고 벌판이나 만주 벌판 같은 끝없이 퍼져나간 평야 한 가운데서 한국인한테 살아보라고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벌판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아늑함을 즐기는 한국 사람들은 모여 앉아도 옹기종기 앉는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시가에 청산별곡이 있는데 한국인들이 삶의 낙원을 산에서 찾으려 한 것이 꾸밈없이 드러나고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산과 흐르는 물은 예로부터 한국인들의 철학과 문학과 예술의 원천이 되어왔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하였으며 물처럼 주야에 그치지 아니하면 우리도 만고상청하리라 하였다. 또한 한국 미술의 원류는 산수화에 있으니 산과 물은 한국인에게 있어 가장 즐겨 그린 자연의 대상이었다.

한국인에게 산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을 지닌 마음의 고향이다. 산을 제외하고 한국이나 한국인을 말할 수 없을 것이며 한국문화의 저변에는 산을 경외하고 산을 사랑해 온 한국인들의 정신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글 : 한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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