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국적은 중국?
프랑스는 유럽 최대의 농업생산국이다. EU국가 중 가장 넓은 농지를 가진 프랑스의 농수산물 수출 1위 품목은 와인이다. 2008년 기준으로 와인이 전체 수출 품목의 14%를 차지했다. 프랑스 농수산물 전체 생산규모로 봐도 와인 비중은 14.7%에 달한다. 하지만 와인을 만드는 포도 재배면적은 프랑스 전체 농지(農地) 면적의 3%에 불과하다고 한다. 포도로 술을 만들면 부가가치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얘기다.
프랑스 와인은 당연한 얘기지만 전량 프랑스산 포도로 만든다. 프랑스는 1935년, 법으로 원산지명칭표시제(AOC)를 도입, 와인 제조용 포도의 생산지역을 제한하고 있다. 자국산 포도를 사용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프랑스 안에서도 지역마다 토양과 기후조건 등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이런 지역적 특성을 와인에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지역 표시제를 법으로 정해, 고급와인의 경우 와인 병 라벨에 포도 생산지역을 반드시 표시하고 있다. 가령 지역 표시가 보르도로 된 와인은 보르도 밖에서 생산된 포도는 쓸 수 없다.
술에 자국산 원료만 고집하는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독일 맥주는 100% 자국산 보리를 사용하며, 영국 스카치위스키 역시 영국산 보리를 전량 원료로 쓴다. 사케의 나라 일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케 전용 쌀을 80여종이나 개발했다. 고급 사케의 경우, 양조장에서 일정 거리 내에 있는 지역에서 수확한 쌀만 사용하는 등 철저히 지역적 특성(이를 프랑스에서는 '테루아'라고 한다)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다.
한국의 전통 술 사정은 어떨까. 거칠게 말하면 한국의 전통 술은 아예 국적(國籍)이 없다. 막걸리와 약주 원료는 수입쌀, 밀의 비중이 92.9%에 달한다. 중국 쌀 수입량이 가장 많으니 한국 막걸리인지, 중국 막걸리인지 알 수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원가 낮출 생각만 하고, 브랜드 관리를 하지 않으니 외국산 명품 술과 어깨를 겨눌 우리 술이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수입산 원료를 쓰는 일부 주류업체들은 "우리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들여온 의무수입할당 쌀로 정부도 사용을 권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쌀 농가 보호를 위해 들여온 수입쌀 소비를 굳이 주류업체들이 떠맡을 이유는 없다. 더구나 지금은 일본에서 불어온 막걸리 바람이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켜 세계로 다시 뻗어나가려 하는 때다. 수백년 역사를 가진 막걸리가 지금보다 상한가(上限價)를 누린 적은 없었다. 지금의 전통 술 붐이 잠시 불고 마는 미풍(微風)이 아니라, 지속적인 강풍(强風)이 되기 위해서는 원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선 외국의 전통 술이 좋은 교훈을 준다. 프랑스 와인 가격은 원산지 규모가 작을수록 비싸진다. 보르도보다는 보르도 안의 메독, 메독 안의 포이약 등으로 원산지가 좁아질수록 와인 값이 비싸다. 앞으로 우리 술도 국산 원료 사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지역성을 바탕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경기미로 만든 막걸리보다는 용인 쌀, 포천 쌀로 만든 막걸리가 더 비싼 값을 받아야 한다. 지역산 술이 많이 나올수록 우리 술의 경쟁력도 커진다. 이를 바탕으로 술 전용 쌀 품종 개발까지 붐을 이룬다면 우리 쌀 품종의 다양성도 덤으로 확보할 수 있다.
/ 박순욱·경제부 차장대우 sw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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