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수는 없어도 늙지 않고 몇 백 년을 살아볼 수 없을까 하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에 따라 불로장생의 약이나 기술을 개발해내기 위한 노력도 멈춘 적이 없다.
우리를 비롯하여 과거 동아시아 세계에 널리 퍼진 신선도 또는 선도(仙道)라는 것도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불로장생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이 모든 것들 또한 음양오행과 깊은 연관을 맺으면서 이루어졌던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불로장생을 향한 인간의 노력이 때로는 얼마나 허무한 실패로 끝이 났는지 어처구니없는 사례부터 얘기한다.
그 옛날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결국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노력은 끊이질 않았고 다시 수 백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도홍경이라는 사람이 당시까지 알려진 약초를 정리했다. 하지만 그런 약초만으로는 불로장생이라는 근원적인 해결을 볼 수 없었기에 다시 한 무리의 도교(道敎) 인물들이 마침내 그런 약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자연으로부터 재료를 채취하여 금단(金丹)이라는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 수 있다고 여긴 이들을 훗날 외단파(外丹派)라고 부르는데, 이는 나중에 복식호흡을 통한 내공-오늘날의 기공(氣功)-의 수련을 통해 같은 목적을 추구했던 내단파(內丹派)와 대비되는 명칭이다.
금단을 연구하고 만들던 외단파가 주로 쓰던 재료로서 8가지가 있었는데 이를 흔히 팔소(八素)라고 했다. 팔소에는 주사(朱砂)나 웅황(雄黃)과 자황(雌黃), 그리고 공청(空靑)과 유황(硫黃), 운모(雲母), 융염(戎鹽), 초석(銷石)이 있었다. 또 좀 더 뒤에는 납과 수은을 정제하면 금단을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성분들은 오늘날에 와서 모두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미치는 맹독(猛毒)성분들로 밝혀져 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황화수은(HgS)을 가열해서 285도에 이르면 순수한 수은이 추출되고 다시 이를 가열하면 산화되면서 붉은 빛을 내는 산화수은(HgO)이 되는데 이를 그들은 금단(金丹)이라 했던 것이다.
이런 약을 먹으면 당연히 그 부작용이 심할 것이 뻔한데 당시 불로장생약의 대표적인 희생자들은 역설적이게도 황제나 고위 귀족들이었다.
왜냐면 금단을 만들던 도사(道士)들은 이 약을 함부로 유출시키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희귀한 약에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단한 권력과 부를 지닌 사람이 아니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바람에 중국의 경우 북위(北魏)와 당(唐) 제국의 숱한 황제들이 이 약의 부작용으로 생명을 잃어야 했다.
당 황실은 이(李)씨 성을 썼고 그 바람에 같은 성을 지녔던 노자(老子)의 후손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양귀비의 남편인 현종은 노자의 도덕경을 해설하기도 하는 등, 당 황실은 불교와 도교(道敎)를 번갈아 숭상했는데, 도교가 득세하면 어김없이 도사들이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 수 있다는 말로 황제들을 현혹했었다.
당이 쇠하기 시작했을 무렵의 헌종(憲宗)부터 시작하여 황제들은 불로장생약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바람에 재위 기간도 대폭 짧아졌던 것이다. 수은 중독의 악영향으로 요절하기도 하고 사실상 실권을 쥔 환관들에 의해 독살당하기도 했다.
여러 황제 중에서 무종은 도사들의 책동을 받아 불교를 대거 배척하면서 그들이 주는 각종 강장약과 불로장생약으로 몸을 다치게 되었다.
이상한 것을 느낀 무종이 도사들에게 얘기하자 도사들은 "그것은 폐하의 뼈가 신선의 뼈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며 불로장생할 징조"라고 응수했다. 물론 무종은 얼마 안 가서 죽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선종도 처음에는 영명한 군주였으나 결국 도사들과 환관들의 꾐과 유혹에 넘어가 불로장생약에 중독이 되어 등에 난 종기로 죽었다.
이런 실패들이 거듭되면서 서서히 사람들은 편하게 약 몇 알만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소망을 접게 되었고 그 바람에 몸의 정기를 함부로 쓰지 않고 수련하면 그럴 수 있으리라는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을 찾게 되었으니 이른바 내단파(內丹派)라 칭했던 흐름이다.
이 내단파는 어떤 면에서 도교의 정통을 잇는 흐름이라 할 수 있는데, 흔히 우리가 내공 또는 기공이라 부르는 수련기법은 이 내단파로부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중국 북방에서 생겨난 전진교(全眞敎)의 도사들은 금욕과 기수련을 통해 불로장생을 꾀했으나 정신수련 과정에서 불로장생 자체가 허망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세속에서 신선으로 알려졌던 이 문파의 구처기라는 도사는 칭기즈칸을 면담했을 때 자신이 알려진 것처럼 수 백 년을 살아온 신선이 아니며, 불로장생이 허무한 욕망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이 구처기는 무협작가 김용의 '영웅문(원제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또 자신의 기(氣)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이성으로부터 기를 흡수하여 건강하게 살아보자는 섹스 기법도 연구되었는데 이른바 방중술(房中術)이라 하는 것이다.
이 내단파는 나중에 무술과 결합되면서 무수한 문파를 이루었고 다양한 내공법을 만들어내었으니 1990년에 출간된 '중국기공대사전'에 보면 무려 6천여 가지 이상의 기공법이 소개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런가 하면 부적을 지니거나 주문을 통해 생명 에너지를 신장시키려는 부주파(符呪派)의 흐름도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점을 보러 가면 뭔가를 풀어준다는 식으로 써주는 부적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득세하고 있고 일본이나 대만 등지는 더 일반화되어 있다.
일본사람의 몸을 뒤져보면 부적이 한 장은 나오기 마련이고 홍콩의 경우 열 장 정도, 대만인의 경우는 아마도 수 십 장은 나올 것이다. 신발 밑창에도 부적, 겨드랑이에도 부적, 지갑에도 부적, 심지어는 신용카드에도 작은 부적을 붙여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뭔가 주문이 적혀진 종이 몇 장이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차라리 인간적이다 싶어 웃고 말 일이다.
또 적선을 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도교의 흐름도 있었다. 사실 이는 웃을 일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다 같은데 좋은 일을 하면 잘 살고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연 적선이 정신적인 만족을 준다는 것을 떠나 다른 행운을 가져다주느냐 하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으로서 점을 치거나 사주를 봄으로써 나쁜 일은 피하고 좋은 일은 더 좋게 하자는 이른바 추길피흉(諏吉避凶))의 도사들이 있었는데 이름 붙여서 점험파(占驗派)라 불린 사람들이다.
필자 역시 사주를 보는 사람이지만 과연 나쁜 일이 온다고 해서 그 일을 피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좋든 나쁘든 그 사람의 생겨먹은 성정(性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그런 것이다.
이 방면에는 명리학 말고도 기문둔갑, 육임신수, 태을신수, 자미두수 등등 숱한 영역이 있지만 깊이 연구해보면 다 음양오행을 기초원리로 한다는 면에서 대동소이한 것들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이런 술학(術學)들이 연구한 사람의 깊이에 따라 대단한 신빙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불로장생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동아시아 세계 밖에서도 부단히 있어 왔다. 서양이나 이슬람권에서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있었고 그런 와중에서 과학이 발전되어 나왔다.
그렇기에 오늘날 불로장생을 향한 노력은 생명과학이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먼 훗날 가서 보면 또 하나의 해프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궁극의 길은 멀고도 험하며, 엉터리 속에 진실이 있고 진실이라 알려진 것 속에 헛됨이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김태규 명리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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