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펼치면 한 번 거두는 것이 음양의 조화(調和)라고 했다.
봄에 하늘이 비를 내려 땅을 적시고 햇빛이 길어지면서 온도가 올라가니 만물이 번성하기 시작한다. 펼침이다.
가을에 공기가 건조해지고 햇빛이 짧아지면서 만물이 건조하고 시들게 된다. 거둠이다.
거두는 것을 나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농부가 봄에 뿌린 볍씨가 여름내 자라서 가을이 되어 건조하고 시들면서 후손을 남기게 되니 바로 쌀이다. 쌀은 농부의 수확이고 우리가 먹고사는 기초가 된다.
이처럼 세상은 한 번 펼치고 한 번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펼치기만 하고 거두지 않으면, 농부에게는 가을걷이가 없을 것이고 사람들은 주리게 될 것이니 결국 농부의 수확은 천지자연이 거두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젊은이가 와서 물어본다.
"선생님, 저는 언제쯤이면 돈을 좀 벌게 될까요?"
"40 대 후반부터 결실이 있겠구먼."
"아니 그렇다면 앞으로도 10 년은 더 남았네요, 그 때까지 고생한다니..."
"성미도 급하긴 이 친구야, 그것이 가장 정상적인 것이라네."
젊음이란 매사 급하고 뭐든 '빨리 빨리'를 외친다. 지극히 정상이라 본다. 하지만 급한 것은 성정(性情)이고 사물의 이치는 따로 있는 법이다.
생각해보라, 농부가 봄에 뿌린 씨앗이 더운 여름을 지나면서 벼가 자라는 것이지 그것이 쌀은 아니다. 벼가 다 자라서 가을이 되니 이제 다 살았으니 후손을 남겨야 하겠다고 만들어내는 것이 쌀이 되는 것이다.
수확은 만물이 시들기 시작하는 가을에 생긴다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이치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평생 준비하고 노력한 것이 인생의 가을이 되어야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그저 밥 잘 먹고 몸이나 건강하면 좋은 것이고 충분한 법이다.
간혹 어쩌다가 30대 혹은 40대 초반에 거액을 만지게 되는 이도 있다. 기술 특허로 또는 아이디어가 좋아서 때로는 그냥 우연히 손을 댄 사업이 이른바 대박을 내기도 한다.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좋은 뉴스거리가 생겼으니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또 성공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느니 하면서 아름답게 치장한다.
그러니 부러워하는 마음은 물론 정상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젊은이에게 큰 재산은 독이 되면 독이 되었지 약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성미도 급하고 한창 자존심 강한 나이에 큰 재산과 성취를 얻고 나면 그 사람 눈에 무엇이 들어오겠는가? 자칫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기 쉽고, 스스로가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들기 십상이다.
사실 젊은 나이에 돈이 많아보았자, 딱히 쓸 데도 별로 없다.
남자라면 공연히 수입차 몰고 다니고, 비싼 술집 드나들면서 오입질이나 할 것이며, 주변 사람들을 비굴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상처를 주는 것이 고작이다.
여자라면 갖은 사치와 허영을 부리면서 주변 친구들 가슴 속에 멍만 들게 할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만물은 이처럼 저마다 펼침과 거둠을 되풀이하면서 생겨나고 사라져간다. 생성소멸(生成消滅)은 사물의 참 모습이며, 영고성쇠(榮枯盛衰)는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다.
사물은 그리고 펼치는 과정에도 부단히 거두는 작용이 들어있으며, 거두고 시드는 과정에도 부단히 펼치는 작용이 들어있다.
성공하는 사람이 그냥 시작부터 그냥 줄 곧 성공해 가는가? 아시다시피 그렇지 않다. 그 과정 과정에서 부단히 반대되는 힘과 대면하게 된다. 쇠하는 과정에서도 부단히 뻗어가는 힘들이 지지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성공의 길을 걷는 이도 마음속에는 근심과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내리막길로 접어든 이도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일들이 따라다닌다.
실은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모두 희망이 있고 근심이 함께 하는 것이다. 사물은 매 순간마다 긍정적인 힘과 부정적인 힘들이 부단히 개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위로 끌어올리는 힘 또는 앞으로 밀어가는 힘을 상생(相生)작용이라 하고 그 반대의 힘을 상극(相剋)이라 한다.
증시를 보면 상생과 상극의 모습이 눈에 선연하다. 오르는 시장(市場)에서도 부단히 하락하는 힘이 작용하며, 내리는 시장 역시 부단히 위로 올리는 힘이 작용한다.
필자는 대학 시절부터 재미로 음양오행을 접하게 되었고 그 이후 뭔가 구체적인 모습을 살필 수 없는 것일까 하는 궁리 끝에 1983년 무렵부터 증시(證市)를 보기 시작했다.
증권 시장은 부단히 아래위로 움직인다. 왜 오르는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돈을 벌지 못하는가? 나중에 보면 결과적으로 올랐을 뿐 내리는 날도 무수히 많기에 그렇다.
왜 하락하는 시장을 떠나지 못하는가? 미련을 접어버릴까 싶으면 증시가 오르면서 다시 희망을 주기에 궁극에는 큰 손실을 본다.
매 순간 부단히 오르내리는 증시를 보면서 필자는 음양오행과 상생 상극에 대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일이 잘 되어갈 때도 내부의 갈등과 모순들이 없지 않다. 그런 요인들은 나중에 일이 어려워지면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다가 어느 시점이나 지점, 즉 임계(臨界)값에 도달하면 급작스럽게 불거진다.
계속 성공을 이어간다는 것은 그 임계값에 도달하기 전에 갈등과 모순을 수습했다는 것이고, 내리막 또는 실패했다는 것은 그 임계값을 지난 뒤에야 수습에 나선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어느 한 순간의 갈림인 것이다.
또 그래서 세상의 모든 재앙은 언제나 엎친 데 덮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한탄한다. "하필 그 순간에..."
본질인 즉, 엎침이 덮침을 유발하는 것이니 덮침을 당하지 않으려면 엎침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협력과 모순(矛盾)이 바로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고, 두 가지 작용을 통해 세상은 변화 발전을 거듭한다.
생성소멸을 거듭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순환론이 아니다. 전년 겨울이 올 겨울과 같은가 틀린가?
같은 점을 보기도 하고 틀린 점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니 생성소멸과 영고성쇠는 순환론인가 그렇지 않은가?
또 긴 시간 속에서 보면 나는 나만의 존재로서 유일하지만, 큰 눈에서 보면 나와 같은 인생을 살다간 이가 무수히 많을 것이니 그 또한 같은가, 같지 않은가?
/김태규 명리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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