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들의 말 중에 '겨울산에서 길을 잃으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보존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은 출발점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초발심'――처음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보이던 길이 보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생기는 것입니다. 눈 덮인 곳에서 앞에 보이는 나무를 향해 똑바로 걸어간 뒤에 걸어온 발자국을 한번 뒤돌아보세요. 똑바로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걸어갔어도 발자국은 이리 삐뚤 저리 삐뚤 눈 위에 박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사는 삶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살아왔다 해도 지나고 나면 잘못과 실수의 흔적이 우리가 걸어온 길과 늘 함께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요즈음처럼 사는 일이 모두들 바쁘고 시간에 쫓기게 마련인 나날의 삶 속에서는 자신과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일수록 뒤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루 생활이 끝나는 때, 한 주일이나 한 달이 끝나는 때에는 그 동안 지나온 자신의 삶을 조용히 뒤돌아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날들과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재충전의 여백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 해가 가고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더욱이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일의 가닥이 잡히지 않는 때일수록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 그때의 자세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다시 일의 실마리가 잡히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다시 채찍질 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 더 채워야 할 것과 덜어 내야 할 것들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불필요하게 쌓인 것, 거리가 멀어지고 공백이 생긴 부분, 관심을 갖지 못해 먼지가 쌓인 곳, 때가 끼고 더럽혀진 많은 것들도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간추리고 다독이며 다시 가뿐한 마음으로 새로운 걸음을 뗄 수 있게 됩니다.
/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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