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이성계가 궁궐터를 잡을 때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산을 청룡, 남산을 백호로 삼아 궁궐을 지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도전은 "자고로 제왕은 남쪽을 바라보고 천하를 다스렸으며 동향을 한 적은 없다."고 적극 반대하였다. 결국 정도전의 주장대로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지금의 경복궁 자리가 결정되었다.
이때 무학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도선비기에 국도를 정할 때 중의 말을 들으면 나라의 기초가 연장될 것이나, 정씨(鄭氏) 성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들으면 5대가 되지 못해 혁명이 일어나고, 200년만에 큰 난리가 나서 백성이 어육(魚肉)이 되리라 하였다. 나중에 반드시 내 말이 생각나리라." 하였다. 과연 5대 안에 세조의 찬탈이 있었고, 개국 후 200년 만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