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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없는 생각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08. 9. 2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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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없는 생각

 

                            - 김 용 택 -


구름 한점 없는 가을날

지리산 피아골 가는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피아골 골짜기에서 흘러 오는 도랑물 건너 왼쪽에 아주 작은 대숲 마을이  하나 산 중턱에 있습니다.

혹 그 마을을 눈여겨 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마을을 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 중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들 중에

아, 저기 저 마을에다가 세상에서 나만 아는  한 여자를 감추어 두고 살았으면 '거을매나 좋을꼬' 하는 생각이

바람 없는 날 저녁 연기처럼 모락 모락 피어 오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혹 댁도 그런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어디까지나 이것은 혹 이지만 말입니다

나도 이따금 저 마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쓸쓸하고도 달콤한 ,

그러나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나 혼자 할 때가 다 있답니다

아내가 이 글을 보면 틀림없이 느긋한 얼굴로

"그래요 그러면 잘해보세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 마을에 지금 가을이 한창이고

지금은 산그늘이 간이 다 서늘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저 마을로 올라가는

이세상에서 내가 본 길 중에서 가장 신비한 꼬불 꼬불한 외길에도

산그늘이 내리면서 희미하게 길이 묻히려 합니다.

그 가늘디가는 길 왼쪽에는 지금 산비탈을 따라

작은 논다랑지 벼들이 노란 병아리처럼

층층이 마을을 따라 올라가며 물이 들었습니다

노란색 중에서 나는 저 벼익어 가는 노란 색을 제일 좋아합니다


초가을이면

저 노란 벼들을 보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오만가지 생각들 중에서 나는 한가지 생각도  건지지 못하고

벼가 다 넘어 지도록 설레기만 하다 맙니다만,

그나저나 옛날에 저 흰 실밥같은 외길에서

새로 시집 온 새색시가 외간 남자와 딱 마주쳤을 때는

어떻게 서로 비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그 실밥같은 외길에도 숨 쉴 곳은 있습니다

그 외길 중간 쯤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는데요

그 감나무 밑에는 용케도 커다란 바윗덩이가 하나 있어

그 바윗덩이 옆에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까지 발걸음을 잘 맞추었겠거니,

거기에다가 사람들은 숨을 쉬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내 생각입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이런생각이 그 얼마나 쓰잘데기없는 생각인지요


여기까지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는지

우리 어머님이 이불 꿰매다 검은 머리에 얹어둔 실밥같은 외길이

가물가물 깜박깜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쓰잘데기없는 내 생각도

여기에서 가물가물 사라지려 합니다

그러나

발걸음이 요량대로 잘못 맞추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였을까

당최 생각이 안 나능만요

또 다만입니다만

그럴때  딱 마주서서는 어떤 남정네는

해 넘어가는 지리산 그 어떤 산날망을 킁킁하며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어떤 새색시는  

눈을 내리깔고는 그 가늘디가는 길바닥을 내려다 보며

안절부절 몸 둘 데를 몰라 했는지 모르지요

아무튼 해는 져서 어두우니 그들을 그냥 거기다가 세워두고 나는 갈랑만요  

내가 가는 길이야

얼마든지 비낄 수 있는 길이니까요

허지만 가기 전에

그 감나무 아래 아주 좁은 공터에다가 크게 숨이나 한번 푹 쉬고 갈라요


지리산 피아골 가는 길

초꺼듬 왼쪽 도랑물 건너 산 중턱에 있는 아주 작은 대숲 마을을 보셨는지요

보셨다면은 그 마을이

소생에게 이런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게 한  마을이구나 하며

그냥 흘깃 스치십시오

거길 누구랑 갔냐구요

이 세상에서

절대 그냥 비낄수 없는 사람이랑 같이 갔구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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