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벗기 - 서영은의 <사막을 건너는 법> 중에서
어렸을 때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엔 커다란 창고 하나가
있었다. 집에서 어디로 나갈 때나, 나갔다가 들어올 땐 꼭
그 창고 곁을 지나야만 했다. 사면은 높다란 벽, 출입구가 있기는 했으나
내 작은 키의 열 배나 더 큰 문은 항상 닫혀 있었다. 그 창고의 존재는
나에게 있어 무지무지하게 큰 공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창고의 커다란 문이 삐죽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참으며 가까이 다가가 문 사이로 들여다본 나는
그만 어이없는 웃음을 픽 터뜨리고 말았다. 그 속에는 구석구석에
주렁주렁 매달린 거미줄과 바닥에 흩어져 있는 가마뙈기들, 그리고
천장까지 차오르는 어둠뿐이었다. 나는 그 문 앞에 허물 하나를
벗어놓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