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해를 보고 달을 보고 바다를 보라 그래야 산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영지는 공통적으로 밝고 강한 기웃을 내뿜는 곳이다. 바로 ‘명당’이다. 흔히 명당하면 묏자리를 떠올리곤 하지만,
명당은 뜻 그대로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찬 땅’을 의미한다. 약 1만 년 전부터 인간은 영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이곳에서 기도와 제사를
지냈다. 그렇다면 현대인에게 영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30여 년 넘게 우리 산하를 누벼온 강호동양학자 조용헌은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기 쉬운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영지로 떠나볼 것을 권한다.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 땅의 기운, 물의
기운, 하늘의 기운이 그득한 그곳에서 온몸을 누이며 수천 수백 년 전 같은 자리에서 휴식과 지혜를 구한 선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라는 것이다.
책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의 울분을 달랜 강진 백련사, 백범 김구가 승려로 머물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공주
마곡사, 동학의 꿈을 발화시킨 고창 도솔암 마애불 등이 106컷의 생생한 사진과 22컷의 전통 민화와 함께 소개한다. 마음의 배터리가 방전된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원기회복제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조용헌 소개
저자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 사주명리학 연구가,
칼럼니스트.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이야기꾼.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민속학을 전공하여 불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호江湖를 좋아하여 스무 살 무렵부터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을 드나들며 수많은 기인, 달사,
학자들과 교류하고, 600여 곳의 사찰과 고택을 답사했다.
문文·사史·철哲·유儒·불佛·선仙·천문·지리·인사 등을 터득한 그의 학문
세계를 강호동양학이라 일컫는다. 땅 위의 학문이 그가 걷는 길이지만 그의 글들은 다시 강단의 학문을 통해 논리적 정합성을 점검했다. 미신으로만
여기던 사주를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이자, 철학과 인문학으로 대접받는 첫 기단을 올린 장본인이다.
문필가로서의 그의 문장은
동양 산수화의 부벽준(斧劈?, 바위표면을 도끼로 팬 듯 표현한 필법)처럼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는 평을 듣는다. 20년이라는 세월, 무수히
올랐던 산과 만난 사람, 풍경을 담고 있는 책에서 그는 한국인의 ‘마음의 행로行路’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먼 과거에서 시작하여 미래로
이어지는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이다.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실천함으로써 이치를
궁구하고, 마침내 무한한 대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1 ·2』 『조용헌의 사찰기행』 『조용헌의 소설 1·2』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
살롱』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조용헌의 명문가』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 『통도유사』 등이 있다. 현재 「조선일보」 칼럼 ‘조용헌
살롱’을 지난 2015년 7월 27일자에 1,000회를 돌파하며 연재중이다.
목차
서문 | 해를
보고 달을 보고 바다를 보라. 그래야 산다
1 남해 금산 보리암 | 이섭대천, 큰 강물을 건너야 삶이 이롭다
2 완주 대둔산
석천암 | 숨어서 공부하다 때가 되어 세상에 나오다
3 구례 지리산 사성암 | 압력밥솥에 푹푹 밥이 익듯 기도가 절로 익어가다
4
과천 관악산 연주암 | 간절함이 없는 삶은 기쁨도 없다
5 고창 선운사 도솔암 | 먼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땅 속에서 솟은 혁명불
6 대구 비슬산 대견사 | 높은 곳에 올라야 전체가 보이고 큰 생각이 태어난다
7 괴산 환벽정 | 강물의 달이 가슴에 들어와 삶을
비추다
8 장성 백양사 약사암 | 병원이 없을 때 민초들이 찾아간 약방, 약사암
9 인제 설악산 봉정암 | 살다 보면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10 서산 도비산 부석사 | 푸근한 소 등에 기대어 가슴속 상처를 어루만지니
11 해남 달마산 도솔암 | 더
갈 데가 없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누나
12 양산 영축산 통도사 | 천 년 전 신화 속을 거닐며 문득 삶을 관조하다
13 계룡
국사봉 향적산방 | 거대한 통바위로 뭉친 계룡, 때를 알리는 산
14 하동 쌍계사 불일암 | 이 물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15 완주 모악산 대원사 | 인생,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간절하게
16 파주 심학산(옛 구봉산) | 스스로 의문을 품었을 때
‘일’이 시작된다
17 공주 태화산 마곡사 | 세월이 흐르기 전에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 있다
18 여수 금오산 향일암 | 나쁜
일을 좋은 결과로 이끄는 힘, 기도
19 공주 계룡산 갑사 | 닭이 알을 품듯 고요히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20 김제
비산비야의 학성강당 | 일생에 한 번은 목숨을 걸어 볼 일이 있어야 한다
21 강진 만덕산 백련사 | 베갯머리에 시원한 우물이 있는 것을
모르고
22 장성 축령산 휴휴산방 | 인간세상에 와서 이만하면 됐지, 무얼 바라겠나
출판사
서평
강호동양학자 조용헌 선생이 30여 년간
온 강산을 누비며 답사한 명당
22곳
30여 년 넘게 우리 산하를 누비면서 천문天門, 지리地理, 인사人事를 공부하고, 그에 관한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온 강호동양학자 조용헌. 그가 우리나라의 영지靈地와 명당明堂 22곳을 엮었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큰 인물은 땅의 기운이 조화를 이룬
곳에서 태어난다)’이라는 말이 있듯 주변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인간은 같이 돌아간다. 환경과 인간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마음이
갈수록 강퍅해지는 것은 어쩌면 콘크리트 건물이 사방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풍광 좋은
곳에서 쉬고 놀고 배우며 삶의 에너지를 얻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 후기 300년을 거의 집권했던 노론이다. 그들은 명산대천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길러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속 계곡에 구곡을 지어 놓고 시시때때로 찾아가 기운을 받고 인생의 시름을 달랬다. 천지자연과
하나 되는 인생관을 가진 그들이었다.
또한 수많은 고승들이 깨달음을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힘을 기르기 위해 찾아든
곳도 대자연의 품이었다. 오랜 세월, 선인들이 힘을 키우고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휴식하고 시름을 달랬던 그곳은 어디일까. 그곳이야말로 오늘날,
마음의 배터리가 방전된 현대인들에게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명당은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찬 땅
‘명당明堂’은 하늘과 땅, 바위와 물, 바람과 빛의 조화가 이뤄진 곳이다. 바위에서 기운이 품어져 나오고, 주변을 물이 감싸고
있어서 적당한 수분을 제공하고, 바람을 잘 감싸주면서, 숲이 우거져 있는 곳들이 대개 영지이다. 그곳은 잠시 머무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눈으로 알 수 없는 기운이 몸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신령하고 신비롭다. 이러한 땅의 기운, 지기地氣는 가는 곳마다 다르다. 묵직한
기운, 단단한 기운, 붕 뜨는 기운, 밝은 기운, 침침한 기운 등. 나를 푸근하게 받아들이면서 생생한 에너지를 주는 땅이 있고, 어두운 기운이
밀려와 힘이 빠지면서 우울해지는 땅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영지는 공통적으로 밝고 강한 기운을 내뿜는 곳이다. 바로
‘명당明堂’이다. 명당 하면 묏자리를 떠올리곤 하지만, 명당은 뜻 그대로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찬 땅’이다. 이런 곳에 몇 시간, 또는 며칠씩
머물면 몸이 건강해지고, 영성靈性이 개발된다. 기감이 발달된 사람은 10분만 있어도 이러한 기운을 느낀다. 예민하게 못 느끼는 사람들도 영지에
머물면 서서히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고,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등산을 서너 시간만 해도 몸이 가벼워지는 이유도 이와 같다.
왜 사찰은 한결같이 명당에 자리하는가
인간은 약 1만 년 전부터 영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들에겐 자연이 곧 신이었으므로, 땅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곳에서 머물며 기도하고 제를 올렸다. 이 정보는 대대로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토착신앙으로 다져진 영지는 불교가 들어오면서 대부분 흡수되어 사찰의 일부로 자리 잡았으며, 동시에 승려를 중심으로
명당에 대한 풍수철학이 체계화되었다.
풍수란 하늘과 땅, 사람의 유기체적인 회통이자 우주적인 질서에 대한 파악이고, 이 질서를
따름으로써 궁극에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사찰에서 수많은 고승들이 깨달음을 얻은 데에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 영지의 역할도
결정적이었다.
풍수철학을 정립한 도선 국사를 비롯하여 원효, 의상, 진각 대사가 공부한 구례 사성암, 의상 대사가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렸던 관악산 연주암, 원효 대사가 수행한 여수 향일암,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35년 간 머물렀던 대구 비슬산 대견사 등 웬만한
사찰에는 고승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와 기록은 그 터가 명당이자 영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보증서와 같다. 이 책에서는 보증서가
있는 곳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땅의 기운으로 인생의 해법을 찾다
명당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서려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의 울분을 달랜 강진 백련사, 백범 김구가 승려로 머물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공주 마곡사, 모두가 평등한 세상! 동학의 꿈을 발화시킨 고창 도솔암 마애불……. 그밖에도 대자유를 구하고자 한 고승들의 고독한 수행,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마음의 칼을 갈았던 지식인들의 고뇌, 오로지 하늘을 향해 목숨을 빌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간절한 기도가 명당에 전해진다.
수백 수천 년 전, 같은 자리에서 그들이 구했던 염원과 기도를 헤아리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자연스러운 깨달음에 닿게 된다. 선인들이 좇았던 마음의 행로行路를 더듬다 어느새 내 마음의 길도 뚜렷이 보게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동양의 철인들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추구했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으면 ‘나는
왜 이 세상에 왔는가’에 대한 답을 얻는다. 그때부터 인간은 외롭지 않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인간사의 온갖 불행을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된다.
조용헌 선생은 말한다.
“풍파 없는 인생이 어찌 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다 말 못 할 고생과 파란만장을 겪는다.
이때 어디로 가야 할까. 바로 영지다. 인생의 허무감을 극복하게 해주는 대자연으로 가야 한다. 인생 헛살았구나 하는 탄식을 멈추게 해주는
그곳으로.”
휴휴명당休休明堂, 그곳에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여행은 왜 가는가?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기 위해서, 희망과 의욕, 마음의 평화와 정신적 충만을 채우기 위해서 간다. 이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는 여행이 바로 영지 기행이다. 특히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영지 기행은 필수다. 중년은 숨 가쁘게 달려온 만큼 마음이 허전해지는
시기다.
‘문득 삶이 허무하고 천지간 나 혼자 있는 듯 외롭다. 열심히 뛰어왔지만 달라진 건 없다. 나를 위해 살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시기, 이때야말로 진지하게 몸과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조용헌 선생은 이
시기에는 외부에서 기운을 보충 받아야만 한다고 충고한다. ‘외부’는 대자연이다.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원기 회복제이다. 땅의 기운, 물의 기운,
하늘의 기운이 그득한 그곳에서 온몸을 누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 보라는 것이다. 대자연은 당신이 누구건, 어떤 사연을 가졌건 부드럽게 안아주며
토닥거려 줄 것이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고.
‘휴거헐거休去歇去니 철목개화鐵木開花라.’ 쉬고 또 쉬면 쇠나무에도 꽃이 핀다.
선어록의 한 구절이다. ‘휴휴명당休休明堂’,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야말로 명당이다. 누구도 주인일 수 없는 자연의 에너지를 지혜롭게
이용한다면, 우리는 늘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106컷의 명당 사진과 22컷의 전통 민화로 힐링하다
이 책에는 명당의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는 106컷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영지의 신령한 기운을 담아내기 위해 어떤 사찰은 작가가
수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또 함께 수록된 그림은 우리나라 전통 민화이다. 단국대 미대교수를 역임한 이영수 선생이 소장한 작품이다. 대부분
100~200년 전 그림으로 추정된다. 자연 속에서 쉬고 놀고 휴식하는 그림을 보노라면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책속으로
서문 중에서
영지靈地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뭉쳐 있는 장소를
말한다. 기氣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몸은 느낀다. 좋은 기운 속에서 마음은 맑아지고 밝아진다. 생각이 높아진다. 그러면 인생이 달라지고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신령’한 기운이다. 여행의 최고 경지는 영지를 가보는 것이다. 왜 영지를 가봐야 하는가.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영지의 지기地氣를 맛보아야 한다. 지기가 있느냐고? 있다. 특정한
장소에 가보면 척추 꼬리뼈를 타고 올라오는 전기자극 같은 느낌이 온다. 이것이 기감氣感이기도 하다. 땅에서 올라오는 지기가 인체 속에 들어와
경락을 타고 흐르는 것이다. 척추 뼈를 타고 올라오는 지기는 뒤꼭지를 지나 머리를 통과한 다음 양 미간 사이까지 전달된다. 땅에서 올라오는 이
기운을 느끼게 되면 여행은 아주 특별해진다. 땅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서문, ‘해를 보고 달을 보고 바다를 보라. 그래야
산다’ 중에서)
본문 중에서
보리암은 ‘독만권서讀萬卷書’를 하고 나서 ‘행만리로行萬里路’를 나섰을 때 우선 순위로 가 볼
만한 영지이다. 금산에서 바라다보이는 남해바다의 푸름, 그리고 상주해수욕장과 점점이 떠있는 섬들을 바라보면 왜 해상사호가 이 산을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남해 보리암 편 23p)
석천암石泉庵 올라가는 산길은 가파르다. 길 주위를 둘러싼 바위절벽들이 사람을
좌우에서 압박하는 형세라, 스마트폰과 보일러 방에 익숙한 도시인들은 위협감을 느낄 만한 지세다. 아스팔트와 네온사인, 아파트로부터 쌓인
‘도시독都市毒’을 뽑아주는 데에는 특효이다. 바위를 만지고, 바위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시면 아랫배까지 숨이 내려오는 것 같다. 다시 바위에
뺨을 비비대어 본다. 암벽이야말로 ‘도시독’의 해독제다.
(완주 대둔산 석천암 편, 38p)
단단한 바위가 밀집되어 있는
지세는 기운이 강하다. 바위는 지기地氣가 응축되어 있는 신물神物이다. 바위가 많으면 기운도 강하다. 에너지가 있어야 도를 닦는다. 바위 속에
있는 광물질로 지구의 자석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는데, 인체의 피 속에도 철분을 비롯한 각종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바위에 앉아 있으면
이 에너지가 피 속으로 들어와 온 몸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래서 몇 시간 동안 바위에서 뒹굴면서 머무르면 나도 모르게 땅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오게 된다. 몸이 빵빵해진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면서 놀았다고 하는 지점들을 유심히 보면거의 대부분 이처럼 지기가 강하게 뿜어나오는
너럭바위들이다. 땅 기운을 받으려고 너럭바위에 머무른 것이다. 사성암의 바위들도 마찬가지이다. 바위가 한두 군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자의
이빨처럼 총총하게 암벽들이 밀집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것도 산 정상에 말이다
(구례 사성암 편, 56p)
선운사 전체를
보면 멀리 외곽으로는 인촌강(또는 풍천)이 둘러싸고 있다. 인촌강은 밀물 때면 바닷물이 내륙 3~4km까지 거슬러 올라오고, 썰물이 되면 다시
바다로 빠진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기운을 모아 인물을 만들어낸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강은 또한 명당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인촌강 뻘밭 속에 향나무를 묻어 놓았다. 수백 년이 지난 후에 꺼내면 이 향나무는 나무 전체가 침향沈香이 된다. 미륵불이 출세하는 시기에 쓸
침향을 미리 저장해놓았던 것이다.
(선운사 도솔암 편, 90p)
대견사는 고소高所에 자리한다. 사상은 높은 곳에서
잉태된다. 고소도 여러 가지이다. 신분의 고소도 있고, 재물의 고소도 있고, 높이의 고소도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을 획득한다. 부분을 보면 통찰이 안 나온다.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때 통찰이 나온다. 통찰이라는 것은 전체의 유기적 관계망을 알아차린다는
의미도 있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켜 본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이것저것이 따로 노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리쿠션’으로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통찰이다. 복잡하면 이것저것 널려 있어서 핵심 간추리기가 어렵다. 그런데 단순화시켜서 보니까 뼈대만
간추려진다. 뼈대만 파악하는 것, 이것이 통찰이다. 통찰에서 사상思想이 태어난다.
(대구 비슬산 대견사 편, 104p)
인생에서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사람은 이때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지점에서
두 갈래로 선택이 갈린다. 한쪽은 자살하고, 다른 한쪽은 기도祈禱를 시도한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기도를 해 본 사람만이 지니는 독특한
깊이가 있다. 문제는 어떤 장소에서 기도를 하느냐이다. 장소에 따라 기도발祈禱發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도는 기도를 하는 사람의 간절한 염원,
그리고 영험한 장소의 결합 정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도발 잘 받는 영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는 것도 삶의
지혜다.
「인제 설악산 봉정암 편」중에서
책속으로 추가
인생에서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사람은 이때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지점에서 두 갈래로 선택이 갈린다. 한쪽은 자살하고, 다른 한쪽은 기도祈禱를
시도한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기도를 해 본 사람만이 지니는 독특한 깊이가 있다. 문제는 어떤 장소에서 기도를 하느냐이다. 장소에 따라
기도발祈禱發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도는 기도를 하는 사람의 간절한 염원, 그리고 영험한 장소의 결합 정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도발 잘 받는 영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는 것도 삶의 지혜다. (인제 설악산 봉정암 편, 141p)
임시정부에서 수많은 고생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한 백범은 국내에 들어오자 마곡사부터 찾았다. 거의 50년 만의 방문이었으니 감회가
얼마나 깊었을까. 깊은 감회에 젖은 백범은 대광보전 앞에서 대중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대광보전 앞에 50년 만에 죽지 않고 다시 선 백범은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라는 구절을 보고 감개무량했다고 한다. 그가 머리 깎고 승려가 된 20대 초반에도 아마 이 구절을 보았을 것이다.
그때는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겠지. 어찌 혈기 방장한 스무 살짜리 청년이 ‘몽중사夢中事’를 알았겠는가. 그러나 50년의 만고풍상을 겪고
70세가 되어 다시 그 대광보전 앞에 서니 이 구절이 가슴을 강타했을 것이다. ‘그렇구나! 몽중사로구나!’ 인간은 자기가 겪어 보아야 깨닫는
이치가 있다. 세월을 어느 정도 살아 보아야 아는 진리가 있다. (공주 태화산 마곡사 편, 267p)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있지만 우리 몸 안에서 내리는 비도 있다. 신장腎臟에서 품어 올려주는 수기水氣가 그것이다. 근심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매일 신경 써야 먹고
살고, 운동부족이고, 화가 치솟을 일만 많아지면 결국 수기가 고갈된다. 그러면 심장병, 우울증, 뇌졸중, 공황장애가 온다. 수기를 회복시켜 주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곳이 영지다. 그러자면 고전을 공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치유방법이다. 너무
새로운 것만 좇다 보면 긴장이 뒤따른다. 조상들이 공부했던 방법으로 돌아가면 안정감이 든다. 전북 김제에 가면 한옥으로 지은 학성강당學聖講堂이
있다. (김제 학성강당 편, 303p)
강진 백련사 앞의 풍광은 원포귀범의 전형이다. 백련사 대웅보전 앞의 건물 이름도
‘만경루萬景樓’다.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는 누각’이다. 구강포 전체를 끌어안고 있는 누각이다. 동산 스님이 백련사에 와서 숨어 있곤 했던
것도 만경루에 앉아 구강포를 관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꿈결 같은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 하고 있으면 인간은 어떤 심정이 될까. 무심無心이
될까. 좌절과 분노와 인생 헛살다 간다는 허망함이 모두 사라진 그 어떤 진공 상태로 되돌아갈까. 유년 시절의 걱정 없고 즐겁기만 했던 동심으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사 한 세상이 모두 몽환포영夢幻泡影 이라는 이치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강진 만덕산 백련사 편, 322p)
저녁에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면서 그 옛날 산속의 나무꾼 심정이 되었고, 비 오는 날 양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천지가
인간에게 주는 끊임없는 은혜의 기운을 느꼈다. 명당은 천시와 지리, 그리고 인사이다.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병이 들었을 때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추어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하는 일과 궁합이 맞는 터이어야만 한다. 문장을
다루는 문필가에게 편백숲의 산책길이 있는 터는 명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성 축령산 휴휴산방 편, 347p)
미디어
리뷰
'讀萬卷書 行萬里路'의 실천… 22곳 靈地를 가다
동양학자 조용헌이 직접 다녀온 '기운
솟는 명당 22곳' 소개
보리암·도솔암 등 유명 암자… 도교·仙의 시선으로 바라봐
남해 금산 보리암에 간 적이 있다.
밤샘 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먼동이 트기 직전. 여명이 밝아오는 보리암에서 남해를 내려다보는데, 순간 찌릿찌릿했다. 꼬리뼈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더니, 뒷목을 거쳐 정수리까지 치솟았달까. 불자(佛子)나 신자(信者)가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 예외적 순간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동양학자 조용헌은 이를 '영지(靈地)'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뭉쳐 있는 장소가 영지고,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몸으로 그 기운을 느꼈다는 것이다.
'휴휴명당(休休明堂)'은 '도시인이 꼭 가봐야 할 기운 솟는 명당
22곳'이라는 부제로 전국의 영지를 소개한다. '기운이 솟는다'는 말을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는 광고 카피만큼이나 근거 없는 낙관이라고
냉소하는 편이지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여행을 떠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일상 탈출, 아름다운 풍광,
낯선 인연에의 기대…. 하지만 한 발자국 더 들어가면 이런 시각도 있다.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 조용헌이
소개하는 명당 22곳은 대부분 사찰이다. 1600년 전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이 땅의 영지들은 대부분 불교 사찰로 흡수됐다.
산이 내뿜는 영기를 상징하는 산신(山神), 물이 지니는 영기를 대표하는 용왕(龍王),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영기의 칠성(七星).
불교의 시각에서 전국의 사찰을 소개한 책은 적지 않지만, 도교와 선(仙)의 시선으로 한국의 대표 사찰과 암자를 풀어낸 책은 드물다. 기운이
솟는다면 그것대로 또 고마운 일이지만, 그보다는 이런 흔하지 않은 자료와 시선으로 쓴 암자사(庵子史)요, 영지사(靈地史)라는 점에서 더
매혹적이다.
가령 보리암에는 간성각(看星閣)이 있다. 말 그대로 별을 바라보는
건물이라는 뜻. 별에서 에너지가 온다고 믿었던 학파가 도가다. 겨울 남쪽 하늘에 뜨는 별이 노인성(老人星)인데, 보리암의 간성각은 바로 노인성을
바라보는 도가의 풍습을 담은 이름이라는 것.
장성 백양사 약사암(藥師庵)은 민초들이 찾아간 약방이었다. 약사암의 바위는 희귀한
흰색. 봉우리 이름도 백학봉(白鶴峯)이다. 풍수에서는 백학봉 산세를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이라 했다. 신선이 독서하는 형세라는 것. 약사암
옆에는 영천굴(靈泉窟)이 있다. 신령스러운 샘물이 나오는 굴이다. 땅의 기운, 물의 기운이 모두 병을 낫게 하는 곳이니, 약사암일
수밖에.
땅과 길을 직접 찾아 걸으며 공부한다고 자타칭 '강호(江湖) 동양학자'다. 강호 동양학자 조용헌이 이 책에 열거한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남해 금산 보리암, 완주 대둔산 석천암, 구례 지리산 사성암, 과천 관악산 연주암, 고창 선운사 도솔암, 대구 비슬산
대견사, 괴산 환벽정, 장성 백양사 약사암, 인제 설악산 봉정암, 서산 도비산 부석사, 해남 달마산 도솔암, 양산 영축산 통도사, 계룡 국사봉
향적산방, 하동 쌍계사 불일암, 완주 모악산 대원사, 파주 심학산, 공주 태화산 마곡사, 여수 금오산 향일암, 공주 계룡산 갑사, 김제
비산비야의 학성강당, 강진 만덕산 백련사, 장성 축령산 휴휴산방.
독만권서(讀萬卷書) 이후에 행만리로(行萬里路)하라고 했다. 무릇
군자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걸은 후에 세상을 논하라는 것이다. 원래는 명나라 서예가 동기창이 서화에서 향기가 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권했다는 화가(畵家)의 철학이지만, 인생의 철학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물며 이 휴가철의 실천 강령으로서야.
22곳
영지(靈地)를 글로 읽고 직접 밟는 '독만권서 행만리로의 즐거움'을 만끽하시기를.
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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