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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꽃잎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5. 3. 2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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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꽃잎

 

                           - 도종환 -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대신 밤새 비가 왔다.

이 산 속에서 자랑하며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산벚나무가 환하게 꽃을 피운 연분홍 꽃그늘과
꽃 사이 사이를 빈틈 하나 없이 파랗게 채운
한낮의 하늘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젖은 꽃들은 진종일 소리 없이 지고
나무는 천천히 평범한 초록 속으로
돌아가는 걸 보며
오후 내내 도라지 밭을 매었다
밭을 점점이 덮은 꽃잎 흙에 묻히고
꽃 향기도 함께 묻혔다
그댄 지금 어느 산을 넘는지 물어볼 수도 없어
세상은 흐리고 다시 적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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