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꽃잎
- 도종환 -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대신 밤새 비가 왔다.
이 산 속에서 자랑하며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산벚나무가 환하게 꽃을 피운 연분홍 꽃그늘과
꽃 사이 사이를 빈틈 하나 없이 파랗게 채운
한낮의 하늘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젖은 꽃들은 진종일 소리 없이 지고
나무는 천천히 평범한 초록 속으로
돌아가는 걸 보며
오후 내내 도라지 밭을 매었다
밭을 점점이 덮은 꽃잎 흙에 묻히고
꽃 향기도 함께 묻혔다
그댄 지금 어느 산을 넘는지 물어볼 수도 없어
세상은 흐리고 다시 적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