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사람이 누리는 복을 열복(熱福)과 청복(淸福) 둘로 나눴다.
열복은 누구나 원하는 그야말로 화끈한 복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를 누리며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열복이다.
모두가 그 앞에 허리를 굽히고, 눈짓 하나에 다들 알아서 긴다.
청복은 욕심 없이 맑고 소박하게 한세상을 건너가는 것이다.
가진 것이야 넉넉지 않아도 만족할 줄 아니 부족함이 없다.
조선 중기 송익필(宋翼弼)은 '족부족(足不足)'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구절마다 '족(足)' 자로 운자를 단 장시의 일부분이다.
청복을 누리는 지족(知足)의 삶을 예찬했다.
다산은 여러 글에서 되풀이해 말했다.
"세상에 열복을 얻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청복을 누리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하늘이 참으로 청복을 아끼는 것을 알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청복은 거들떠보지 않고, 열복만 누리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남들 위에 군림해서 더 잘 먹고 더 많이 갖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다 가지려고 한다.
열복은 항상 중간에 좌절하거나 끝이 안 좋은 것이 문제다.
요행히 자신이 열복을 누려도 자식 대까지 가는 경우란 흔치가 않다.
모든 사람이 우러르고, 아름다운 미녀가 추파를 던진다.
마음대로 못 할 일이 없고, 뜻대로 안 될 일이 없다.
어느새 마음이 둥둥 떠서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된다.
후끈 달아오른 욕망은 제 발등을 찍기 전에는 식을 줄을 모른다.
잠깐만에 형편이 뒤바뀌어 경멸과 질시와 손가락질만 남는다.
그때 가서도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기는커녕, 주먹을 부르쥐고 두고 보자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갈기만 하니, 끝내 청복을 누려볼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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