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산 내려가며
내가 걷는 백두대간 128
이성부
나이 들어갈수록 대소사 많아지는 것이
자질구레한 쓰던 것들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름없는 고만고만한 산봉우리들
모두 넘어가야 하는 내 팔자 같아 혼자 버겁다
문병하고 문상하고 넥타이를 고쳐 메고
돌잔치 친목계 동창회 어쩌다가 수상식 출판기념회
이런 데 가는 것이 왜 갈수록 고달파지는지
나도 나를 잘 몰라 몸 휘청거린다
예전에는 산도 나와 한몸임을 알았는데
요즘은 이빨처럼 생겨 덤벼드는 산들 무서워라
하얀 이빨 아니라 검게 솟은 침묵의 아가리
내 가슴은 어느덧 공동(空洞)이 되어
사랑을 삼키고도 덤덤하구나
- 이성부 시집"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창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