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 논설위원
동의보감 잡병(雜病)편 소갈(消渴)항에 이런 시가 나온다. "물만 찾아 쉴 새 없고 오줌 또한 멎지 않네/ 살은 점점 빠져가고 정액 골수 마른다네/ 꿀과 같이 단오줌이 기름같이 미끄럽고/ 그 원인을 찾아보니 한두 가지 아니로세/ 술을 즐겨 너무 먹고 고기 굽고 볶았으며/ 물 마시고 밥 먹는 것 날을 따라 늘어나니…." 쉽게 허기지고 갈증 나는 '소갈'은 오늘날의 당뇨병을 가리킨다. 17세기 한의학자 허준의 당뇨병 묘사가 눈에 잡힐 듯 생생하다.
▶기원전 1500년 이집트 파피루스에 '지나치게 소변을 많이 본다'는 당뇨 기록이 나온다. 고대 중국 의학서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음식을 먹자마자 눈 녹듯 녹아버려 돌아서면 배고프고 입 마르는 병'이라고 썼다. 우리나라에선 13세기 고려 '향약구급방'에 첫 '소갈' 기록이 나온다. 동서양 의서(醫書)가 공통되게 꼽은 당뇨의 3대 증상은 다음(多飮)·다식(多食)·다뇨(多尿)다.
▶옛사람들도 당뇨가 기름진 음식과 운동 부족에서 오는 '부자병'이라는 걸 알았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식탐 많은 세종을 걱정하는 대목이 실록에 전한다. "주상은 몸이 비중(肥重)하니 때때로 나와 노니셔서 몸을 존절히 해야겠다. (그래서) 내가 주상과 더불어 무사(武事)를 강습하려 한다." 세종은 평생 당뇨와 합병증으로 고통받았다. 세계의 당뇨환자 명단에는 문호·대작곡가 등 위대한 예술가 이름이 즐비하다.
▶1921년 캐나다 외과의사 프레드릭 밴팅이 개의 췌장에서 추출한 물질이 혈당(血糖)을 줄인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이 물질을 '인슐린'이라고 불렀다. 밴팅은 엄청난 돈이 될 수 있는 인슐린에 대한 모든 권리를 모교 토론토대에 단돈 1달러에 넘겨줘 대량생산의 길을 텄다. 국제당뇨병연맹과 세계보건기구는 그의 생일 11월 14일을 '세계 당뇨병의 날'로 정해 기린다.
▶인슐린 투약도 소용없는 중환자에게 남은 마지막 방법이 인간과 같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돼지 췌장을 이식하는 것이다. 이때 나타나는 면역거부 반응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열쇠다. 그제 서울대 의대 박성회 교수팀이 기존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을 없앤 새 약제를 개발해 동물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실용화에 성공할 경우 당뇨병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것이라 한다. 국내에만 300만명 넘는 환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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