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기억은 확실하지 않지만
노안이 찾아왔는지 도무지 가까이 있거나
평소 무리 없이 읽던 조간신문과 눈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아예
신문이나 책 등 활자화 된 문서조차
가까이 하지 않게 됐어요.
답답해하는 이 촌닭에게 아내는
돋보기를 쓰거나 다 초점 안경을 쓰라고
귀가 따갑게 권했지만
노안을 부정하며 쉽게 그 말을 귀에 담지 않았지요.
청소년 시절 우리들은 중년의 어르신(?)을 뵈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꼰대"라는 단어였습니다.
그 시절 4, 5십대 어른들을 보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 까까머리 우리 눈에는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덧 시간은 까까머리 학생이던 나를
그 당시 놀리던 "꼰대"로 만들어 버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도 않고
이제는 노인네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아무려면 어때요?
세월 앞에 장사 없으니 순순히 받아드릴 수 밖에요.
문득 언젠가 읽은 글 중에 이런 글이 생각납니다.
☞미움의 안경을 쓰고 보면..
똑똑한 사람은 잘 난체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착한 사람은 어수룩한 사람으로 보이고
얌전한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활력 있는 사람은 까부는 사람으로 보이고
잘 웃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예의바른 사람은 얄미운 사람으로 보이고
듬직한 사람은 미련하게 보이나
사랑의 안경을 쓰고 보면..
잘난 체 하는 사람도 참 똑똑해 보이고
어수룩한 사람도 참 착해 보이고
소극적인 사람도 참 얌전해 보이고
까부는 사람도 참 활기 있어 보이고
실없는 사람도 참 밝아 보이고
얄미운 사람도 참 싹싹해 보이고
미련한 사람도 참 든든하게 보인답니다.☜
맑은 눈으로 잘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마음의 눈과 함께 본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문득 코끝에 걸린 안경이
고맙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 들어감에 대한 긍정의 사고일까?
아니면 자포자기일까?